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를 5세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* 그의 재위 초기인 1523년, [[덴마크]]로부터 [[스웨덴]]이 독립했다. * 그의 스페인 군대가 [[프랑스군]]을 [[매치락]]으로 박살낸 [[파비아 전투]]는 유럽사에서 최초로 화기인 [[총]]이 전면에서 활약해 대승한 전투로 평가된다. 그 놀라운 위력을 실감한 [[유럽]] 각국은 재빨리 총의 제식화를 추진하게 되었으며, 그의 재위 말년에 이르면 총기가 이미 유럽은 물론 [[일본]]까지도 전파된다. 따라서 그의 재위기는 [[창(무기)|창]][[검]] 같은 [[냉병기]]가 몰락하고 본격적으로 총의 시대가 열린 급변기라고 할 수 있다. 덧붙이자면 아이러니컬하게도, 파비아 전투에서 활약한 스페인 테르시오는 마지막까지 백병전을 염두에 둔 [[테르시오]] 전술을 유지했다. 이들이 로크루아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유럽 전술의 대세는 총기의 화력을 극대화하는 [[전열보병|선형진]]으로 넘어가게 된다. 역으로 생각하면 파비아 전투와 무려 120년의 격차가 있는 로크루아 전투까지 테르시오가 줄창 써먹힐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한 전술이었다는 얘기도 되겠다. 이렇듯 총이 뜨면서 자연히 [[기사(역사)|기사]] 계급은 몰락을 걷고 경보병이 승패를 가르는 시대가 열린다. 이에 따라 기사가 중핵을 이루는 [[봉건제도]] 또한 구조적으로 붕괴하기 시작했고, 이는 종교개혁으로 인한 가톨릭의 퇴조 [[크리]]와 맞물려 드디어 [[중세]]가 완결된다. * 별로 긴밀한 관계는 없지만 [[러시아]]의 악명 높은 [[차르]] [[이반 뇌제]]의 치세와도 겹친다. [[조선]]으로 치면 11대 [[중종(조선)|중종]], 12대 [[인종(조선)|인종]], 13대 [[명종(조선)|명종]] 연간에 걸친 시기이다. * [[예수회]]가 가톨릭을 [[명나라]]에 처음 포교하고, [[일본]]이 처음으로 [[스페인]] 출신 [[선교사]] [[프란치스코 하비에르]]에 의해 [[가톨릭]]과 접한 시기도 바로 그의 재위 기간이었다. 이때 처음으로 스며든 [[그리스도교]] 신앙은 이후 꾸준히 민중에게 파고들어 훗날 중국의 [[태평천국의 난]], 일본의 [[시마바라의 난]]으로 이어진다. * 그의 재위 중에 그 유명한 천문학자 [[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]]가 [[지동설]]을 발표했다. 훗날 [[철학자]] [[임마누엘 칸트]]가 '''코페르니쿠스적 전환'''이라고까지 경탄할 이 사건은 당시 [[유럽]] 사회 전체를 일대 충격으로 몰아넣었다. 이것이야말로 [[중세]]적 사고가 근세로 넘어가는 분기점이라 칭해도 좋을 것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